국제연합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내일은피구왕 조회 54회 작성일 2020-12-03 00:16:54 댓글 0

본문

EBS [5분사탐] 국제연합

대한민국 대표 수능 채널 EBS의 강의

2019 내일을JOB아라(국제기구) - 국제연합 UN 사무국

2019 내일을JOB아라(국제기구) - 국제연합 UN 사무국

[워크넷 온라인 진로상담 신청] https://www.work.go.kr/consltJobCarpa/jobConslt/getJobConsltList.do

[자세한 직업정보 알아보기] https://www.work.go.kr/jobMain.do

유엔(UN)이 생긴 진짜 이유 2편: 2차 세계대전

유엔창설과 2차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과 유엔의 출범
안녕하세요. JG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이전과 달리 유럽 내에는 더 이상 전쟁을 하나의 외교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세계 강대국들은 평화를 유지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과 달리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군비경쟁은 더욱 심화되었고 특히 일본과 같은 경우 해군력을 키워가며 국방력을 늘렸죠.

일본의 팽창을 견제하고 새로운 전쟁을 원하지 않았던 영국과 미국은 군비 경쟁을 막기 위해 1921년 워싱턴 D.C. 에 모여 어떻게 해군력을 줄일까에 대한 회의를 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 영국,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각 국가별로 건조할 수 있는 배 무게 상한선을 두는 Five power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후 미국과 영국은 배 건조 총량 상한선을 거는 Four power조약을 맺으면서 일본을 견제와 세계 평화의 달성 두 가지 목표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한편,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는 독일의 재건과 배상금 문제였습니다.
오늘날 독일의 경제력은 유럽 대륙 내 최고입니다.
사실 이것은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독일의 경제가 재건이 되지 않고는 유럽의 경제는 다시 살아날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전범국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재건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시에 유럽의 승전국은 자신들이 독일로부터 받은 피해를 보상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1921년 1320억 골드 마르크라는 막대한 보상금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독일 그 돈을 값을 수 있을 리가 없었고, 1923년 1월 이를 거부하고 채무불이행을 선언합니다.

그러자 돈을 너무나도 받고 싶어 했던 프랑스와 벨기에는 독일의 루 지방을 강제 점령하고 채무 이행을 요구합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던 독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승전국과 독일 사이는 교착 상태에 들어갑니다.

사실 이 사건 미국은 초기에만 해도, 독일과 승전국의 보상금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미국이 관심은 자신이 영국과 프랑스 등 동맹국들에게 빌려준 돈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전쟁 후 이들에게 돈을 요구하죠.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야, 나 돈 없어 못 내놔”라고 대답을 했고 “네가 정 원하면, 독일한테 보상금 받아서 그 돈으로 네 돈 갚을게”라고 합니다.
결국 미국은 독일의 배상금 문제에 관여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1924년 독일의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200백만 달러를 지원할 계획을 만들었고 J.P. 모건을 비롯한 미국의 은행들은 4년 동안 독일은 도왔고, 독일 정부는 그 돈으로 승전국에게 배상금을 갚아나갔습니다.
승전국 역시 미국에 빌린 돈을 갚을 수 있었죠.

1928년 가을 미국은 독일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 독일에게 1210억 마르크에 달하는 비용을 58년에 걸쳐 상환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계획을 짰습니다.
그러나 대공황이 닥치면서 이 계획은 무산이 되었죠.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의 시작으로 전 세계의 경제는 밑바닥으로 가라앉아버렸고 미국은 전 세계에서 손을 떼고 고립주의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독일은 2년 사이에 실업자 수가 600만 명에 달하면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히덴부르크 대통령의 죽음으로 대통령 겸 총리를 겸하게 된 히틀러는 1939년 9월 1일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은 시작을 시작합니다.

1차 세계대전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해 삼국 협상을 승리로 이끌었던 미국은 대중의 반대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미국인들이 전쟁에 반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의 전쟁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칠과 함께 유엔의 기초가 되는 전후 8가지 원칙이 담긴 대서양 헌장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설득하는데 실패했고, 결국 전쟁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1940년이 되자 독일의 세력은 더 커졌고 프랑스가 독일에 손에 떨어졌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했고 여러 차례 회담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나치가 소련을 침공하고, 일본이 진주만을 침공하면서 두 국가 모두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고 영국, 러시아, 미국의 연합국이 탄생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목표는 두 가지였습니다.
한 가지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또 다른 한 가지는 전후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미국의 전후 체제 수립은 전쟁 발발과 거의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전후체제 수립은 미국의 국무성의 주도로 1940년 1월부터 추진되고 있었고, 미국 국무성은 다양한 민간조직으로부터 전후 국제기구 창설을 위한 의견을 반영했습니다.
또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국제기구 창설 시도는 의회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윌슨 대통령의 국제연맹 가입 거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죠.
어쨌든 국제연합에 즉 UN의 창설이 보다 공식화된 것은 위에서 언급한 처칠과 루즈벨트가 함께한 ‘대서양 헌장’에서 이었습니다.
이 헌장에서 양국 지도자는 ‘경제 분야에서 모든 국가들의 최대한이 공조“를 촉구하였고 ”총괄적인 안보의 보다 광범위하고 상시적인 기구의 창설“을 시사했습니다.
이는 경제 및 안보 역할을 포함하는 전 지구적인 국제기구 창설 제안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은 계속해 서모여 전후체제 수립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3 대국 외상회의에 의한 모스크바 선언에서 연합국은 “평화 및 안보의 조직과 유지를 위한 전쟁 중의 지속적인 협력”을 공약하고 ”실질적으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일반적인 국제기구 창설“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후 1944년 중국을 포함한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은 국제기구에 기본적인 골격인 목적, 성격, 회원국, 기관들, 권한 등에 논의를 마쳤고 이후 독일의 항복으로 유럽에서의 전선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태평양 전선만 남았던 1945년 2월에 국제연맹의 위임 제도, 식민주의 문제, 사법재판소 문제 등을 얄타회담 합의했습니다.
1945년 4월 프랑스를 포함한 5개의 강대국의 주도로 유엔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하면서 유엔이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 

#국제연합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519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Copyright © www.pisaf.or.kr.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help@oxmail.xyz